딸깍의 신학
나는 주로 밤에 코딩을 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펼치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머릿속에 맴돌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었다. iTerm2의 검은 화면이 켜지고, 익숙하게 claude를 타이핑했다. 커서가 깜빡인다. 심연의 눈이 떠지는 것처럼.
"이 프로젝트 언어는 뭘로 하면 좋을까?" TypeScript를 추천드립니다. 나는 엔터를 친다. 딸깍. "프론트엔드는?" Next.js가 적합할 것 같습니다. 딸깍. "백엔드는?" Supabase를 추천드립니다. 딸깍. "배포는?" Vercel이요. 딸깍. 맥북 팬이 돌아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린다. 삼십 초 만에 프로젝트의 모든 기술 스택이 결정되었다. TypeScript가 왜 Python이 아닌지, Next.js가 왜 Remix가 아닌지, 나는 묻지도 않았다. 처음 딸깍은 질문이었다. 세 번째는 동의였다. 열 번째쯤에는 계약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딸깍을 눌렀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선택'을 하지 않는다. '승인'할 뿐이다.
모델이 답을 생성하는 방식은 두 갈래다. 학습된 지식에서 바로 꺼내거나, 실시간으로 웹을 검색하거나. 때로는 둘을 섞는다. 그런데 그 배합의 비율, 검색 결과의 가중치, 최종 추천을 결정짓는 논리.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블랙박스다. 마치 오래된 숲 한가운데 서 있는 것과 같다. 길이 보인다. 이끼 낀 돌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고, 나뭇가지들이 자연스럽게 아치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