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로파간다로서의 호프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해석이다. 영화를 보면서 유독 눈에 띄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 누군가의 증언과 이야기만을 기반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
- 그 이야기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하나둘 참여하게 되는 것.
-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유머와, 마치 모든 일이 남 일이라도 되는 듯한 대사들.
이 요소들을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나 완성도 측면에서 보면 “이게 뭐지?”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현실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프로파간다의 한 장면으로 보면 어떨까.
과거의 프로파간다는 주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맥락에서 특정 사상을 주입하기 위한 활동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고, 누구나 정보를 퍼뜨릴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프로파간다는 더 이상 특정 권력만의 도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프로파간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었다.
어떤 동기를 가진 사람이 자신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다양한 수단을 통해 퍼뜨린다. 그 메시지의 진위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것을 검증하려 하기보다 먼저 반응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더 크게 부풀린다.
흥미로운 건, 꼭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이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그저 가볍게 소비하고,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는 점점 더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것이 대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커진다.
그러다 나중에 그것이 실체가 없거나 과장된 이야기였음이 드러나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그 메시지의 타겟이 된 사람만 피해자로 남는다.
영화 초반부에서 괴물의 존재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몇몇 사람의 증언과 묘사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이끌려 괴물을 쫓기 시작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괴물이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계속 죽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장면이 반복된다. 마치 “나는 잘못이 없다”는 듯이, 책임지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운이 없었던 거예요.”
과연 그 장면에서 정말 나올 수 있는 대사였을까.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였고, 누군가는 죽었는데, 그 상황을 마치 남 일처럼 정리해버리는 말.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어떤 연예인이 공항 출입국 심사에서 잘못을 했다더라.
어느 미슐랭 식당에서 와인 문제가 있었다더라.
누군가에 대한 이런 루머가 있다더라.
누군가는 특정한 동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부풀리고, 대다수는 방관자의 위치에서 그것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소비 자체가 다시 이야기를 더 크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사실 여부는 점점 덜 중요해진다.
재미있는 건, 이 현상이 `<호프>`라는 영화 바깥에서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수 있다. 누군가는 정말 최악으로 재미없게 봤을 수도 있다. 둘 다 개인의 경험이고 감상이다. 내가 너와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재미없다”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야만 정상인 것처럼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한 토론이나 검증보다, 그 감상 자체가 이상한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이 생긴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재미없게 본 사람들을 향해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역시 반대편의 프로파간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딱히 그렇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어차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현상이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나거나 배척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심리를 이용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이득이 된다.
나조차도 `<호프>`를 보기 전 수많은 부정적인 리뷰를 봤고, 주변의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그렇게 별로냐”고 미리 물어봤다. 나 역시 그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던 셈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정말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어떤 흐름에 올라타고 있는가.
내 취향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다수의 반응을 따라간 결과는 아닌가.
이 질문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다. 특히 AI 때문에 우리가 직접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홍진 감독의 의도가 실제로 이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 안에서 반복되는 증언, 맹목적인 참여, 책임 회피, 무책임한 소비의 구조가 영화 밖에서 벌어지는 반응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지점이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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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전